예수수도회 CONGREGATIO JESU

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 홈
  • Bulletin board
  • 세상

세상

쌍용차 김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01-15 19:39 조회3,825회 댓글2건

본문

“쌍용차 김밥, 그냥 김밥이 아녜요. 소통의 상징이죠”
 
30여 명 사제와 수도자, 쌍용차 해고자들과 함께 김밥 만든 날
 
 
 
   
▲ 경기도 평택시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수도자와 사제들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함께 김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여러분, 이건 불합격입니다. 범인 누구예요?”
 
참기름을 바르던 김정욱 신부(예수회)가 옆구리 터진 불량 김밥 한 줄을 들고 ‘자수’를 종용하자, 긴 테이블에 둘러 앉아 김밥을 말던 30여 명의 수녀와 신부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14일 저녁, 경기도 평택역 인근의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나승구 신부) 사제와 수녀들로 북적였다. 이날의 방문 목적은 김밥 말기. 할당량은 700줄이다.
김밥은 다음날 새벽 6시 반부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정문과 후문에서 출근하는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판매된다. 김밥을 만들어 판매해 온 이들은 쌍용차 해고자들. 지난해 11월 27일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에 판매한 김밥은 10주째 ‘완판’됐다.
 
한 줄에 천 원이니 모두 팔면 70만 원 정도가 모여야겠지만, 실제 모이는 김밥 판매금액은 늘130만 원 선이다. 두 줄 사면서 만 원을 내는 이도 있고, 세 줄을 사면서 오만 원을 내는 이도 있다.
 
“정문 앞에서 선전물만 나눠주고 집회만 하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김밥 팔면서 출퇴근하는 공장 안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요.”
 
   
▲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씨가 15일 새벽 평택 쌍용차 공장 4초소 앞에서 김밥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고동민)
쌍용자동차노조 김정욱 사무국장은 ‘달라진 분위기’를 말한다. 2009년의 파업 투쟁 이후, 공장안의 산 자(비해고자)와 죽은 자(해고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겼었다. 한때는 동지였으나 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긴 배신감과 죄책감, 혹은 분노와 슬픔, 이런 모든 것들이 응축된 깊고도 넓은 강이다.
달라진 분위기에는 작년 3월 무급휴직자 458명, 정직자까지 480명의 공장 복직이 큰 힘이 됐다. 복직자 가운데에는 2009년 파업에 열심히 가담했던 이들이 많다. 물론 공장으로 돌아갔어도 무급휴직자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공장 안에서 비해고 노동자와의 갈등도 여전하고, 파업 당시의 책임을 물어 월급의 50%가 가압류되는 이들도 26명이다.
이날 김밥을 말던 한 해고자는 “한번 찬바람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참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많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장 안의 분위기가 바뀐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고동민 씨는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지만 노동 강도는 여전히 매우 높다. 그동안은 불만이 있어도 참기만 했을 텐데 숨 쉴 구석이 좀 생긴 것 같다”며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임단협이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작년 12월 새벽, 김밥 판매에 동참했던 이정순 수녀(천주섭리회)는 공장 앞 분위기에 대해 “가끔 냉랭한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현장 관리직인 듯 했고, 김밥을 사지 않는 이들도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는 등 전반적으로 호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해고자들로서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마냥 즐겁고 기꺼운 것은 아니다. 4년 반이라는 시간은 용서와 화해의 조건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고동민 씨는 “아직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공장 정문 앞은 아직 상처고, 그래서 어려워요. 서울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보니까 처음 2주 정도는 정말 반가웠거든요. 그런데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 옆구리가 터진 ‘불량 김밥’을 다 같이 나눠 먹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불편한 이들은 비단 동민 씨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피하지 않았고, 애써 힘을 내 손을 내밀었다. 노력이 반복되면서는 좀 더 편해졌다. 이런 노력이 만들어낸 미세한 틈이었을까. 작년 연말, 공장 안 사람들은 몇 번의 송년회에 함께하자는 연락을 해 오기도 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오는 22일 후원주점을 연다. 보통 후원주점은 재정 확보가 일차 목표지만, 이날 열리는 주점의 목표는 공장 안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2500여 명이 일하는 평택 공장 안에 티켓 3,500장을 보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2009년 이후 4년이 넘도록 술 한 잔 같이 못 해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쉽지는 않다. 부담은 되지만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다.
 
“주점에서 모인 후원금으로는 다시 공장 안 사람들을 만나는 마당을 준비하려고 해요. 김밥이나 주점 등에서 공장 안 사람들이 보여줬던 마음을 돌려주는 의미로요. 만만치 않겠지만 2월부터는 공장 안에서 해고자 복직 서명을 받아보려고 해요.”
 
김정욱 사무국장은 “회사 안 기업 노조가 인원 충원과 관련해 ‘해고자 문제 해결’을 요구안에 포함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700줄 김밥 말기는 밤 9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김밥은 밥의 양도, 모양도 천차만별이고 때론 재료가 빠지기도, 종종 옆구리가 터지기도 했지만, 분명 특별했다. 준비한 많은 이들의 바람이 함께 담겼기 때문이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의 한 수녀는 자신이 만든 김밥이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건네는 화해와 소통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밥 한 줄에 새로운 희망을 느껴요. 단순한 김밥이 아니죠. 공장 안에 남은 자(비해고자)와 떠난 이(해고자)를 연결해주는 상징이 아닐까 해요.”
 
고동민 씨는 “(김밥을) 만드는 것 자체에 의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는 싸우고 투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를 만드는 노동자거든요. 작년에 시민들과 자동차를 만들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김밥으로 공장 노동자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이런 게 중요해요.”
 
화요일에 와락센터에서 김밥 재료 준비를 함께하는 고동민 씨의 부인 이정아 씨는 “김밥 팔면서 오고 가는 게 생기고 한두 마디씩 말도 건네고 하니까 느낌이 다르다고들 하더라”면서 “밤새 김밥 말면서 다들 힘들다고 투덜거리지만 실은 좋아한다. 북적거리니까 잔치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 김정욱 신부(왼쪽)와 장동훈 신부가 김밥을 말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나승구 신부(왼쪽)와 이강서 신부가 김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장동훈 신부(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는 김밥이 “복원되는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예전엔 살생부가 있을 정도로 증오의 관계였잖아요. 조금씩이지만 그걸 메워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 만들고 파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쌍용차 분들에게도 김밥은 의미가 있을 듯해요. 다행이에요.”
 
한편, 이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와 정의구현사제단은 3천만 원의 기금을 쌍용자동차 해고자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작년 8월, ‘쌍용자동차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는 전국 천주교 사제 · 수도자 5,038명 선언’을 신문에 실은 후 남은 광고비와 주교회의 정평위가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3차로 모금한 금액을 합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밥 말기에 도전했다는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김밥을 싸는 내내 마음에 바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밥은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좋은 날 싸잖아요. 공동체의 끈을 이어주는 음식이라고 해야 하나. 해고자들이 빨리 공장에 들어가서 직원 체육대회나 야유회 때 다 같이 김밥을 싸서 웃으며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수도자와 사제들이 김밥 마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와락센터 권지영 대표는 “역시 이래서 ‘김밥 천국’인가 봐요”라며 웃었다.
 
다음날인 15일에도 김밥은 완판됐다. 4초소 앞에서 고동민 씨가 판매하는 김밥을 처음으로 사간 이는 쌍용차 용역경비였다. 그는 “동료가 김밥이 맛있다며 꼭 사다놓으라고 했다”며 5줄을 사갔다.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댓글목록

벽소령님의 댓글

벽소령 작성일

김밥을 처음 사간 이가 용역 경비였다니.. 코 끝이 찡합니다.
밥으로 만나는 일이 쉽고 따뜻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것 같습니다.ㅎㅎ
아침부터 감동으로 시작합니다~

주님평화님의 댓글

주님평화 작성일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진지한 모습으로 김밥을 싸는 신부님들 모습, 아름답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