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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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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3-12-24 08:56 조회4,3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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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 박홍기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직통으로 가는 길도 있나요
얼마나 비싼 차표를 끊으면 되나요
그 길에도 차벽이 가로막혀 있으면 어쩌나요
그 길에도 공권력이 지키고 서 있으면 어쩌나요
그 길에도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어쩌나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저 산꼭대기 낮은 집들 위에 제일 웅장한 교회로 가면 되나요
저 담쟁이넝쿨 고풍스런 성당으로 가면 되나요
900만 비정규직 가족들도 정규적으로 갈 수 있나요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들도 마음 편히 갈 수 있나요
시시때때로 끌려가는 저 철거민들도 노점상들도
이주노동자들도 차별 없이 온전히 들어 갈 수 있나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천국은 좋은 곳이라는데
거기도 부동산 투기를 하나요
그렇다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못 가겠군요
도대체 목매달지 않고
기름 끼얹지 않고 연탄불 지피지 않고
망루에 철탑에 오르지 않고
뛰어내리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2013년 대한민국, 이 땅에는 아비규환 밖에 없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다시 돌멩이를 들지 않고
다시 스크럼을 짜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 송경동은 성탄절을 앞두고 철망처럼 참혹한 현실 앞에서 “어디에 진정 천국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일까?” 묻고 있다. ⓒ한상봉 기자
 
 
 
 
 
 
 
 
‘별이의 크리스마스’
 
어제는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 있었다. 앉을 자리도, 추위를 피할 천막 하나도 없었다. 그곳에서 23일째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일하다 ‘전태일’을 얘기하며 자신을 내놓고 간 고 최종범 열사의 유가족 이미희 님이 노숙 농성을 하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마침 노사의 잠정합의안이 나왔다는 날이었다. 내용은 아쉬웠다. 명백한 위장하도급이었지만, 삼성은 끝내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입장 표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다시 곧바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떠나갔다. 그곳에도 24명의 동료와 그 가족들의 죽음을 안고 벌써 몇 년째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이 있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도 1년 넘게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코오롱 해고자들이 있고, 인천 부평공단 입구엔 빈 공장에서마저 쫒겨난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이 있다.
 
알려진 곳은 그나마 덜 외롭다. 지난 십수년간 수백만 명이 일터에서 쫓겨났고, 9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이 되었다. 오늘도 저항할 힘이나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무슨 특별한 사람들이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도덕적 선지자들이 나서서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 모든 철거 현장에서, 정리해고 현장에서, 그 숱한 거리와 광장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일상적으로 싸우는 이들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 1인 시위를 하러 간 광화문 지하차도에는 1년 넘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싸우고 있는 장애인들도 있었다. 오늘은 내내 공공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동자들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10년하고도 8년 만에 침탈당하는 민주노총 앞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어야 했다.
 
어디에 천국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길이 있다면 이젠 정말 그 길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다. 온 거리에 국적 불명의, 의미 불명의 캐롤송들이 울려 퍼질 것이다. 대개가 호객을 위한 상점들의 스피커 소리들이다. 흥청망청 수많은 상품들이 소비될 것이다. 인간성 역시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어디에 진정 천국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일까?

길을 모르는 나는 24일 저녁 7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최종범 님을 추모하고, 우리 시대 모든 자본권력의 상징인 무노조 삼성을 규탄하는 촛불을 들고 서 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별이 크리스마스’라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최종범 열사가 남기고 간 갓 돌 지난 예쁜 딸, 별이라고. 나는 그 예쁜 아이가 이제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처럼 사랑스럽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수많은 삶의 현장,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짓밟히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았다. 죽어간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항을, 꿈을, 인간다움을 포기할 수 없다. ‘별’이와 같이 어떤 죄악에도 물들지 않은 해맑은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아기 예수들이 오늘도 이 땅 위에 다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이들을 따라 가다보면 어쩌면 그 길에 다다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24일 밤 ‘별이의 크리스마스’에서 만나고 싶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간혹 예수의 길처럼 온갖 박해를 받으며 피흘리며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24일 밤 ‘별이의 크리스마스’에서 만나고 싶다.
 
송경동
시인. 19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다.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꿈꾸는 자 잡혀간다> 등이 있다. 제12회 천상병 시문학상, 제6회 김진균 상, 제29회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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