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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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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님평화 작성일13-11-25 14:56 조회4,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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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헌금  (대전가톨릭대학교 김유정 신부님 묵상 글)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

신학생 때에 착의식이나 수직식 미사 강론 중에 주교님께서 “하느님께서는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뽑지 않으시고 우리처럼 부족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셨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면, 겉으로는 동의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그래도 똑똑한 편인데... 재능도 남들보다 못하진 않은데...’ 라고 꿍얼거리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도무지 겸손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겸손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겸손’은 제가 갖고 있다고 착각하던 덕목들에 또 하나의 덕목을 추가하려는 노력이었을 뿐, 진정 내면으로부터 겸손해진 일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 40일 피정을 하면서 저의 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정말 보잘 것 없었습니다. 긁어도 한 부스러기나 나올까... 저 자신이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꼴찌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이제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꼴찌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슬픈 마음이 더 컸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저 자신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작고 유치했기 때문에 봉헌한다는 것 자체가 죄송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하느님께 탓을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제게 더 주셨더라면 더 드렸을텐데... 제게 주신 것을 다 긁어모아도 이것 밖에 안 되네요...”

그렇게 눈물과 함께 저 자신을 담아 하느님께 봉헌하려고 하느님을 바라보려는데, 주님께서는 제가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지 않고, 그것을 봉헌하고 있는 저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데이트를 나간 남자가 상대 여성은 바라보지 않고, 자기가 사온 선물이 보잘 것 없다면서 그 선물만 바라보며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그 여성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그녀는 선물이 아니라 상대만 바라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하느님 앞에서 그러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바라보고 계신데, 저는 드리는 게 보잘 것 없어 죄송하다며 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무슨 상황에서건, 마음의 눈을 들어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서 들고 있는 것이 선물이든 십자가이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의 길을 가시면서 당신께서 지고 계신 십자가만을 바라보시며 ‘왜 이렇게 무거워. 안지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하고 가셨다면, 과연 끝까지 그 길을 가실 수 있으셨을까요? 창조주이신 주님께 인간들이 지워 놓은 천부당만부당한 십자가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지고 가시면서도 눈을 들어 하느님 아버지만을 바라보시며 그 길을 걸으셨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시며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예수님 당시에 과부들은 대부분 가난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대단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입니다만, 예수님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안에서, 모든 권리는 성인 남자를 통해서만 행사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없는 여인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고, 고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편에 “주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들은 사회적으로 늘 가장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봉헌했습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데나리온인데, 렙톤은 그것의 백 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데나리온을 7만원으로 계산한다면, 렙톤은 7백 원이고, 렙톤 두 닢은 1400원입니다. 그리고 이 돈이 과부가 갖고 있는 돈 전부였습니다!

이보다 더 궁핍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내일을 위해 남겨두지 않고 모두 봉헌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봉헌했다는 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봉헌했다는 것을, 자신을 통째로 봉헌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가,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당신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신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렙톤 한 닢은 갖고, 다른 한 닢만 봉헌해도 괜찮았을 과부가 두 닢 모두를 봉헌하는 모습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하여 전부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남편을 여의고, 장성한 아들마저 집을 나가, 그야말로 가난한 과부이셨던 성모님께서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신 때부터, 오늘도 마음을 다하여 아드님과 당신 자신을 봉헌하고 계실 장면을 떠올립니다. 우리도 자기 자신을 이처럼 있는 그대로 봉헌할 때가 있을까요?

사실은 매 미사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봉헌 시간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성찬기도 3양식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몸소 저희를 영원한 제물로 완성하시어” 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봉헌하는 이 거룩한 미사에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희생 제물이 되어, 아버지께 봉헌되게 해 달라고 청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사 때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 아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아갈 때에 ‘영원한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성가 중에 ‘우리의 제물’이라는 성가가 있는데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창조주인 당신께 무엇을 바치리. 우리들의 미약함 받아주옵소서” 우리는 하느님께 내가 희생한 일들, 잘한 것, 자랑하고 싶은 것만 봉헌할 것이 아니라, 가슴 아픈 것, 부끄러운 것, 나의 잘못까지도 있는 그대로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나의 미약함까지도 모두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전부 다 봉헌하는 것입니다.

‘내 생애의 모든 것’이라는 성가도 있습니다. ‘내 생애의 모든 것 당신께 드리니, 내 생애의 모든 것 받아 주시옵소서.’ 예전에 이 성가를 부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으로는 이렇게 부르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내 생애의 절반만 당신께 드리니, 내 생애의 절반만 받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토요일에 밀양에 갔을 때에, 우리는 평화로이 순례하고 기도하려 하는데, 막상 산 저쪽에서 야광복을 입은 경찰들이 줄지어서 우리를 막기 위해 내려오니까... 겁이 났습니다. 솔직히 쫄았습니다. 어느 틈엔가 제가 앞장을 서고 있었습니다. 이제 산모퉁이를 돌면 경찰과 부딪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앞장서서 가셨다’는 말씀이 그렇게 와 닿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앞장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도 겁이 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니면 차라리 주저할 때에 ‘이러시면 안됩니다. 수난 예고 세 번이나 하셨으니 예루살렘 가셔야죠’ 하고 잡아 끌 제자라도 있었더라면 인간적인 힘이라도 더 낼 텐데...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반대자들, 박해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은 ‘과부가 봉헌한 렙톤 두 닢’이 아니라, ‘렙톤 두 닢을 봉헌한 과부’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보신 것은 ‘렙톤 두 닢’이 아니라, ‘가진 것을 전부 봉헌하고 있는 과부’입니다. 우리가 매순간 있는 힘을 다하여 바라보아야 할 대상도 내가 가진 선물이나 내가 짊어진 십자가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하루 매순간, 내 마음 안에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을,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을,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을,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을, 평화가 있다면 그 평화를 하느님께 봉헌합시다. 그 어떤 것도 내 것으로 삼아 누리려고 하지 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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