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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4일 시국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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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님평화 작성일16-03-21 08:04 조회4,0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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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4일 시국기도회

시국기도회 집전 순서


321일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성바오로수도회/ 28마산교구/

44인천교구/ 11사제단 상임위/ 18일 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왜관수도원/

425광주교구/ 52청주교구/ 9전주교구 

(집전 순서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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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4.월.

생명에 눈떠 있는 사람

사람을 바라 보는 사람

 

 

강론 : 김인한 신부(부산교구 우리농살리기)

 

    

24628A4856E7AB9003EDBB제가 사는 남쪽에는 이제 봄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지천에 새순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쑥도 나물들도 여리지만 이곳저곳에 피어있습니다. 겨울에 아무것도 없는 곳 허허벌판에 나 혼자 서 있었던 것 같지만, 우리 주변에는 참 많은 생명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이 생각되어지는 이 차가운 벌판에 이렇게 많은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차가운 바닥에서 봄과 여린 생명을 떠올리는 것이 한가롭게 느껴지고, 현실을 모르는 말이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생명의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 결국 지금 시대를 살리는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들의 죽음의 방식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해 사람들은 티비 재미난 장면이라고 비웃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논바닥에 가서 세찬 물줄기를 여린 모를 향해서 쏘던 장면이었습니다. 이제 갓 논에 앉아 있던 모가 그 사람이 쏜 거대한 물줄기에 고꾸라진 모습을 말입니다. 우리는 비웃고 그를 욕했지만, 농민들은 안 그렇게 했습니다. 내 논이 아닌데도, 그 모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저를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그들의 생명의 감수성은 그렇게 향해 있었습니다. 우린 그를 나무라기만 했습니다. 죽어간 모는 그저 한 사건으로만 기억할 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겹치는 모습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지금은 푸르게 자라고 있을 밀밭에 씨를 뿌리고, 올라와 생명을 뿌리던 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던 한 농민에게 그때와 똑같이 거대한 물줄기를 쏘았던 것입니다. 고꾸라진 여린 모와 여린 한 농부는 그렇게 생명을 바닥에 내려놓는 지경에 갔습니다.

 

얼마나 생명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여린 모가 그 물줄기를 맞고 성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여린 농민이 그 물줄기를 맞고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한 생명이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되어지는 것 앞에, 기계에 게임하나 져서 모두 흥분해서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이 과연 온당할 일인지를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서있을 수 있는 시작이 어디인지를 묻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돌아봐야할 지금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오늘 독서와 어제의 복음에서 똑같이 군중에게 묻습니다. 다니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금 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과연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사람인지를, 생명인지를 아니면 우리도 똑같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건과 그것의 문제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생명의 존재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내리쳐야할 존재, 어떻게든 없어져야 할 존재 혹은 문제로 봅니다. 노동자, 농민, 가난한 이, 위안부 할머니, 개성공단, 테러분자, 거기엔 무엇이 있을까요? 그들의 말들 속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지, 한 생명의 인생과 삶의 생채기와 그 사람들 둘러싼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선거를 다투는 아웅다웅한 지저분한 소리들만 가득합니다. 서로 물어뜯고 후보만 되면 당선 될 거라고 국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온갖 자신의 가치를 늘어놓지만 거기에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권력을 챙기는데 밖에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더 노골적으로 말입니다.

 

이 정권이 등장했을 때 설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런 시간의 연속 후에 우리는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안 되겠구나, 아 이제는 그들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발도 가지 않고 멈춰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들이 생명의 감수성이 없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그들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시선을 놓쳐버리고, 올바름을 말하는 것에 말입니다. 오늘 독서의 군중의 무서운 침묵이 느껴집니다. 그것을 깨는 한 소리가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책임을 먼저 가지라고 말입니다. 한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 말이 펼쳐집니다. 거대한 죽음의 침묵과 죽음의 카르텔을 깨는 것은 무서운 침묵이 아니라, 이 작은 뭇생명의 외침입니다. 한 아이의 말처럼. 겨울의 침묵을 깨는 것은 작은 풀잎에서 시작됩니다.

 

한사람을 살리지 못하면서 구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위태로운 벌판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의로움을 말할 수 없습니다. 죄인과 폭력과 율법과 판단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우리를 침묵하기를 원합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며 상처받은 사람들과 같아지기 싫으면 침묵하길 바랍니다. 여러 가지 법으로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는 그들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소리칠까봐, 자신의 거짓이 드러날까 봐 말입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계속해서 무엇을 만들어 내야지만 자신의 것이 정당할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들을 듣다보면 불현 듯 제가 사는 곳에서 쓰는 욕이 생각납니다. 쎄가 만발로 빠져 뒤질 놈. 번역하면 혀가 쭉 뽑혀서 돌아가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친절하게 해석해 드렸습니다. 그들이 한 말로 그들이 한 이유로 그들은 심판 받을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굳이 40이라는 긴 시간을 걷고 있습니다. 왜 긴 시간을 이렇게 함께 해 나가는지를 묻습니다. 그저 시간을 살아갑니다. 사순시기는 우리들의 시간을 하느님의 시간이 되게 하는 시간 조정 때입니다. 즉흥적이고, 단편적이고, 폭력적인 시각을 바로잡는 것.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들은 너무 즉흥적입니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이 길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옳음만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시간을 통해 그들이 내어놓은 결과를 보며 그들이 하는 것들이 시작과 마침을 보게 합니다. 없는 국가 위기 상황도 만들어 내고, 없던 남북 대치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북에 의해 해킹 당했다고 자랑합니다.

 

그 짧은 순간만을 사는 그들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짧은 자신의 시간만을 보았던 과거의 정권처럼 스스로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자신이 가볍게 보았던 생명만큼 그들도 가볍게 흩날려 갈 것입니다. 그분은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심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당합니다. 결국에 우리가 아는 사실은 생명의 주인이신 분으로부터 그가 버린 생명으로 심판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빛에 서있지 않고, 생명에 서 있지 않는 이들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금 이야기 해봅니다.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걷고 있습니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빛입니다. 그분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고 단언하십니다. 그 선언에 우리에 대한 말도 잊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놓치지 않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주인과 생명의 주인께서는 우리를 빛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생명에 깨어있는 사람이 이것을 치유합니다. 그들과 같아지지 않도록 깨어있고자 합니다. 생명에 눈떠 있는 자, 사람을 바라보는 자, 먼저 아프고 마지막까지 아프는 사람이 이 세상을 치유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 지향을 놓치지 않고, 그분과 함께 살리는 길을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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