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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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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08-14 10:59 조회7,9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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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와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다음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박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혜숙씨가 발표한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 전문이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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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

박성호 엄마(정혜숙)


그리스도의 평화.

한국 방한을 앞두고 계신 교황 성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멀리 한국 땅에서 교황 성하의 방한을 기다리고 있는 저는 '정혜숙 체칠리아'라고 합니다. 가족 모두 천주교 신자이고 4명의 주님 자녀 모두 평소 교황님을 존경하고 좋아했습니다. 온 가족이 시복시성 미사에 참여하기로 약속했고 교황님을 뵙고 싶어 방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교황님 기다렸는데... 산산이 부서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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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억울하고 허무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길" 여야가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증인 채택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5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대책위원회 소속 정혜숙 씨가 호소문을 낭독하자, 이를 지켜보던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지난 4월 16일. 이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잊히지 않는 지난 4월 16일, 대한민국 남쪽 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18살 아들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로 간 우리 아들 박성호 임마누엘은 교황님처럼 사랑 많은 훌륭한 신부님이 되고 싶어 했던 착하고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서서히 물에 잠겨 죽어가는 모습을 우리 부모들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속수무책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 가슴을 찢고 통곡해야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TV 생중계를 통해 사고와 구조 실패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모두가 목격자가 되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슬픔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후 우리 가족들은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구하지 못한 것인지 구하지 않은 것인지, 장비가 없었기 때문인지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 사라져간 304명의 소중한 생명들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임하시며 가장 상처입은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교황 성하.

안타깝게도 참사가 일어난 지 120일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 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가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우리 세월호 가족들과 국민들이 호소하는데도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힐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독립적이고 투명한 수사를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정부와 국회는 전례가 없다며 안 된다고만 합니다. 저는 수사권이니 기소권이니 그런 말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왜 우리 아들이 죽었는지를 알아야겠고 왜 꼭 책임자를 벌해야만 하는지를 알아야겠습니다. 절망에 빠진 이의 이야기일수록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잘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게 지도자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교황님, 억울한 저희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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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 참여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 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정부와 국민들께 호소하며 우리 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42km에 달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흔적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아이들의 교복을 입고, 아이들의 명찰도 달고, 아이들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습니다.

3명의 유가족들은 5kg짜리 십자가를 짊어지고 21일간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하며 단식도 했습니다. 저 또한 7일 동안 단식한 후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16일 시복미사를 거행하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유민이 아빠는 시복미사 날이면 34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계시겠네요. 지치고 힘들고 억울하다가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모든 것을 잃었기에 지칠 수가 없습니다.

교황 성하.

우리 세월호 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꿈 속에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고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아직도 우리 성호가 저를 부르던 목소리가, 같이 성당에 가던 시간들이, 교황 성하의 방문을 같이 기다리던 그 시간들이 생생히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겪는 건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러한 아픔과 슬픔을 다른 사람들이 다시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소중한 생명들이 탐욕의 제물이 되어 죽어가지 말아야겠기에, 우리 나라를 안전한 나라로 만들고 싶기에 슬픔을 딛고 눈물을 참으며 단식을 하고 노숙을 하고 생명문화를 수호하는 외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낮은 곳으로 한없이 내려오시는 교황님
낮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교황님

억울한 저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 아이들의 진실을 꼭 밝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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