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은 온통 공사 중입니다. 조금의 땅이라도 있으면 아파트나 빌라가 세워지고, 생명을 일구던 논과 밭이 도로로 바뀌고 있습니다. 5~10분 정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미친 듯이 도로를 넓힙니다. 청정 청양이라고 선전하면서도 산을 허물고 도로를 만드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른 아침 천안을 가야할 일이 생기면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도로 위에 동물의 사체가 뒹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로를 건너다가 차에 치인 고라니, 개, 고양이, 때론 닭의 사체가 도로 위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십자가를 긋습니다.

조금의 편안함을 위해―정확하게는 돈을 벌기 위해서― 생명의 터를 파괴하고, 그 속에서 자리를 잡고 살던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인간의 의식 상태가 안타깝고 아픕니다. “보시니 좋았다” 하신 하느님을 고백하면서도 그 좋음이라는 상태를 인간의 물리적인 편안함과 맞바꾸는 오늘의 신앙이 불편합니다.

가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저기 눈에 보이는 닭이 자원입니까, 아니면 생명입니까?” “바다와 강에서 살고 있는 어류가 자원입니까, 아니면 생명입니까?” “우리가 보는 나무는 자원입니까, 아니면 생명입니까?”

ⓒ박홍기

사이코패스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존재를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상화할 때, 생명이 지닌 존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가치란 모든 것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창조된 생명은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생명을 먹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먹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 안에 내면화되고 다른 이의 생명을 위해 죽을 수 있게 됩니다. 한국 사회는 사이코패스를 양성하는 기관 같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사라지고 파괴를 통한 개발로 인해서 얻어지는 돈이 모든 것이 되는 사회, 그래서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가야할 목적지로 선전하는 사회,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르쳐주지 않는 교육, 사이코패스 양성소입니다.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서야 한다는 사고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현실에 교회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은 저만이 느끼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밤을 잃어버리면 병이 납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는 밤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로지 존재하는 시간은 낮입니다. 밤은 성찰과 쉼을 위한 시간입니다. 밤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야곱의 사다리의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을 소진시키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 그러나 그 자리는 그리스도인이 고백하는 주님의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은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땅의 자리, 사람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가 듣는 베드로의 증언은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타고 계신 이름 모를 어떤 사람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땅 위에서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으신 역사의 예수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다음의 증언은 올바르고 힘이 있습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증언을 들으신 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기초로 교회가 세워집니다. 역사의 예수가 걸으셨던 길을 동반하면서 체험하고 확신한 베드로의 증언을 기초로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는 베드로가 아닙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증언 위에 세워진 세상을 향한 문입니다. 하느님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뜻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예언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베드로의 증언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어 나를 보내셨으니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교황 주일은 세상을 향한 문으로써 세워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교황님께서 스스로를 교황이 아닌 종들의 종이라고 부르듯이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교회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발을 닦아 주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교황 주일은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빛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음식에 뿌려지는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빛은 없습니다. 소금은 스스로를 녹여 음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빛과 소금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상태에 반응하는 것은 어우러짐의 상태, 한 몸이 된 것이며 상대가 품어내는 진동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의 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웃고 우는 것이고, 서로의 가슴을 맞대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춤추지 않는 빛과 소금은 가짜입니다. 주님께서는 지상에 내려오셔서 지상의 생명들과 춤추셨습니다. 그 춤을 보고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이천년 전, 지상에서 생명들과 춤추셨던 예수님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교황님의 방한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지상의 생명들과 더불어 춤출 수 있기를, 세상을 향해서 열린 문이 되기를.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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