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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성탄 선물을 재의 수요일에 풀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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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03-06 16:37 조회4,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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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 <복음의 기쁨>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성탄 대축일 바로 다음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놀랍게도―정말 놀랍게도― 2014년 사순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은 사순 담화의 머리말로 “그분께서는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참조)를 삼았다.
 
낯익음 속의 낯설음으로 다가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 속에서 교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성탄 축제의 한복판에서 교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 축일 아침에 교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여, 담화 내내 “저”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는 교황은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생각을 건네고 있는 것일까?
 
 
교황이 보낸 초대장
 
사순 담화에 앞서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은 책으로 나오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신앙의 해’ 폐막을 하던 시점인 작년 11월 말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발표된 권고는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가기 전, 교황은 연이어 사순 담화를 발표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복음의 기쁨>에 대한 부록이거나 핵심 요약이었을까? 어쩌면 교황은 성탄절을 맞은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가난’을 선물로 주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 맙소사! 성탄 선물이 ‘가난’이라니.
 
교황은 사순 담화의 머리말로 삼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 속에 이미 당신께서 하고자 하는 말을 다한 듯했다. “여러분이 그분의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난해지라는 초대, 곧 복음적으로 가난하게 살라는 이 초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라는 화두를 교황은 던지고 있다. 교황의 성탄 선물이자, 사순 담화는 곧 교회 전체에게 참여하라는 초대장이었다.
 
 
아픔 없는 자선을 신뢰하지 않는다
 
교황은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 결코 말장난이나 구호가 아님을 말한 후,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논리, 곧 사랑의 논리이며 강생과 십자가의 논리를 담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단순한 동정이나 풍족한 가운데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필요한 이웃들 가운데 있어주는 것, 버려진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방식이며 그것이 바로 자비롭고 온유하며 연대하는 사랑이라 설명한다. 그런 사랑을 지닌 그리스도의 가난이 가장 큰 부유라고 말하며 교황은 단 하나의 진정한 비참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의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교황은 담화의 마무리에서 교회 전체가 물질적 · 도덕적 · 영적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 메시지를 증언하라고 요청했다. 이어 우리의 가난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부유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아울러 요청했다. 교황은 진정한 가난은 아프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당신은 아무런 희생도 따르지 않고 아픔이 없는 자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코미디일 수 없는 영화
 
  
▲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원제 Habemus Papam)>라는 영화가 지난 5월 국내에서 개봉했다. 현재의 교황 선출 이후다. 영화는 교황의 사망으로 추기경단 회의에서 선출된 새로운 교황의 이야기다. 선출 이후 순조롭게 의전이 진행되었지만 교황 선언 연설(Habemus Papam) 직전 신임 교황은 연설을 거부한다. 그리고 바티칸 궁에서 며칠 동안 가출(?)을 한다.
 
거리로 나온 교황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베드로에서 시작한 교회가 너무 많이 변했다. 그런데 시인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 우리의 상처를 유일한 치유자에게 보여드리자.” 마음의 결심을 굳힌 듯한 교황은 바티칸 궁으로 돌아가 교황 선언을 하는 발코니에 나와 수많은 군중에게 연설을 한다. “무류적인 선택으로 선출된 저는 힘과 소명의식이 아니라 잠시 혼란을 겪었습니다. 지금 교회는 힘찬 지도력으로 큰 변화를 가져와야 하며 만인을 아우를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주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저는 그런 소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후 발코니에서 허무하게(?) 내려온다. 영화는 그렇게 끝났다. 사실 이 영화는 현재의 교황 선출 2년 전인 2011년 이탈리아에서 나왔고 그해 칸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길에서 함께 걷지 않으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22일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새로운 추기경들의 서임식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마르 10,32)는 복음을 인용하며 그분과 함께 걷자고 말했다. 추기경들에게 길로 나오라는 간곡한 초대였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철학을, 어떤 이념을 가르치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수행해야 할 여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걸음으로써 가는 길을 배웁니다. 형제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교황은 사순 담화의 첫 문장에서 “저는 개인과 공동체로서 걸어가는 회개의 길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라며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현재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담화로 내놓았다. 교황의 사순 담화를 수많은 신학자, 성직자들이 더 깊은 해설과 주석을 달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인 필자가 기고를 하는 이유는 담화의 행간마다 담겨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을 함께 고민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사순절에 성탄 선물을 푼다
 
이웃을 위한 진정한 가난은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며, 그런 희생이 들어 있는 포기가 무엇인지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준 성탄 선물을 사순 문턱에서 풀어보며 교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동시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만만치 않은 초대장이지만 그것을 길 위에서 열어보고 실천하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발코니에서 계속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다. 사순 문헌 제일 끝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교황의 소박한 요청대로 주님이 그분을 지켜주기를 기도한다.
 
 
 
김유철 (스테파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예총 부회장.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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